추억합니다 - 남령, 뿌리깊은 나무


남령의 일생은 중용과 겸손이었다. 그 한결같음은 우리나라 경제의 자양분이었고, 삼양의 역사였다.
남령의 삶을 통해 삼양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도록 하자. 켜켜이 쌓인 나이테 속에 삼양의 미래가 있다.




1. 성북동 자택에서 형제들과(뒷줄 오른쪽 두번째)(1942년)  2. 만주 매하농장 사무실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앞줄 가운데)(1944년)  3. 다양한 활동을 펼쳤던 장년기의 남령(1968년)  4. 집무실에서의 남령(2007년)



# 시대에 답한 기업가 정신

남령의 목표는 제조업을 일으켜 산업보국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었다. 먹고 사는 일을 시급히 해결하고 사업을 일으켜 국가에 보답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나라 잃은 백성에게 미래에 대한 기대와 꿈을 품게 해주고 싶었다. 삼양 설탕의 역사를 만들고, 화학섬유 사업을 일으켰던 것도 시대의 사명에 의연히 답했던 결과였다. 또한 양영·수당재단을 통한 장학 사업으로 기업인의 책임을 다했다.


1. 아버지(수당 김연수)를 곁에 모시고, 가운데가 수당, 오른쪽이 남령(1970년)  2. 전주공장 현장 순시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남령(1971년)  3. 울산공장 설탕 포장 공정을 둘러보며(1979년)  4. 울산공장 순시 중 수당을 바라보며(1997년)  5. 양영재단 장학금 수여식 행사(2001년)  6. 고려대학교 수당 학술정보관 개관식(2004년) 



# 미래를 위한 결단과 투자

남령은 미래를 보는 혜안과 통찰력, 과감한 결단과 실행력으로 기업을 이끌었다. 연구 개발에 힘을 쏟고 변화를 거듭하며 그룹의 초석을 닦는데 혼신을 다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미래에 대한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중앙연구소와 의약바이오 사업은 삼양의 미래를 위해 남령이 남긴 유산이다.


1. 삼양종합연구소 현판식(1979년)  2. 창립 60주년 기념식 및 체육대회(1984년)  3. 삼양화성 건설현장을 둘러보는 남령(1990년)  4.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삼양그룹 연구소 개소식(앞줄 가운데 남령)(1993년)  5. 울산 지역 사업장 순시(1997년)  6. 삼양제넥스 대전공장 방문 모습(1999년)



# 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

타인에게는 봄바람이었지만 스스로에게는 서릿발처럼 엄격했던 남령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숨쉬고 있다.

1. 얼굴에 띄운 미소에서 그의 낙천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1991년)  2. 새천년을 앞두고 젊은 사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1999년)  3. 든든한 반려자로 평생을 함께한 故 차부영 여사와 함께(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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