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습니다 - 영전에 올리는 글

한평생 쌓은 업적과 공로를 짧은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는 그 기록 속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박제하고자 함이리라. 김상하 명예회장의 생애를 글로 되새기며, 그 숭고한 헌신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진정한 기업인이란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봉사와 헌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민족과 사회에 필요한 사업인가?'

이것이야말로 기업의 존재가치를 유지하는 유일한 질문이다!"


1988년 5월부터 12년간 대한상의 회장을 역임하시며 우리나라 상공업과 기업을 위해 헌신하신 김상하 명예회장님의 영면에 깊은 애도와 슬픔을 표합니다. 

명예회장님은 취임하신 해에 열린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리 기업의 외연을 해외 시장으로 넓히시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경제사절단을 조직해 헝가리, 불가리아 등 이전까지 경제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국가들을 방문해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 관계를 증진시켰고, 한 · 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에는 한·중민간경제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아 8년간 양국의 경제교류를 이끄셨습니다. 1998년에는 한·일경제협회 7대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양국 경제발전에 크게 공헌하셨습니다.

또 전국 상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삼아 정부의 기업 지원사업이 지역 특색에 맞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전국 상공인들의 경영환경 개선 요구를 정부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시며 우리 경제의 성장에 기여하셨습니다. 천연자원 없이 국가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일은 오로지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뿐이란 신념으로 대한상의 직업훈련원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교육 내용도 '고졸 청소년의 기능 훈련’에서 ‘여성 및 중견 연령층을 위한 특화교육' '고급 기술직을 위한 심화교육' 등 다양하게 추진하셨습니다.

경영인으로서는 전후 국민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선대의 경영 이념을 계승 발전시켜 삼양사를 식품, 화학, 의약·바이오 등의 사업으로까지 다각화하고, 국민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기업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온유와 화합의 리더십으로 대한상의를 국가경제 발전의 민간 파트너 역할로 이끄시고, 혜안과 뚝심 경영으로 국내 식품·화학 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신 김상하 명예회장님께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남고의 영면에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2021년  1월  21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용만













남고 김상하 명예회장님께서 떠나신 지 어느덧 두 달이 넘었습니다. 김상하 명예회장님을 수행했던 첫 해외 출장의 몇 에피소드로 남고 명예회장님을 추모해 봅니다. 

1983년 6월 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제당협회(South Africa Sugar Association, SASA)의 초청으로 국내 제당3사 사장단의 남아공 방문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김포공항을 출발, 홍콩을 거쳐 총 열몇 시간이 걸리는 긴 비행 끝에 남아공의 관문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말라 말라(Mala Mala)' 야생보호구역으로 이동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환영 만찬이 베풀어졌습니다. 현지 시간 저녁 9시(한국시간 새벽 3시)에 시작된 야외 만찬은 임팔라(Impala)라고 불리는 아프리카산 영양 고기를 비롯한 풍성한 요리가 차려진 만찬이었지만, 한국 사절단들은 모두 졸음을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김상하 명예회장님(당시 사장)만은 전혀 졸리지 않으신 듯, 초청해 주신 SASA 회장단 일행과 즐겁게 환담하시면서 요리들도 모두 맛있게 비우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여쭈어 보았습니다. "사장님은 졸리지 않으셨습니까?" 명예회장님께서 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나라고 왜 졸리지 않았겠나?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졸음을 참았지. 이렇게 열심히 만찬을 준비해 환영해 주는 분들 앞에서 나라도 맛있게 먹고 즐거워해야 하지 않겠나?"

CJ제일제당과 TS대한제당의 당시 수행원은 부장과 차장급이었고 저만 아직 대리가 되기 직전의 계장 직급이었습니다. 남아공 출발 전 명예회장님께서 "자네가 나를 수행한다고 하지만, 실은 내가 자네를 수행하는 것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는데, 현지에 가 보니 실제 그러했습니다. 아침에 조찬을 하시면서 명예회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일정은 이것이니 여기에는 자네가 수행하도록 하고, 그 다음 일정은 자네 별도로 자유시간을 가지면 되네." 친히 불편을 감수하시면서 아직 말직인 신참을 데리고 가셔서 훈련을 받게 하시고자 하셨던 깊은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희망봉 방문 일정을 두고 약간의 이견이 발생했습니다. 사절단 중에는 명예회장님을 비롯해 희망봉을 방문해 보신 분도 있으셨고, 희망봉 방문이 처음인 분도 있었습니다. 방문 경험이 있으신 분은 가 보아야 황량한 곳에 바람만 부는데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일부 의견이 있었지만, 김상하 명예회장님께서 아직 안 가 보신 분들을 위해 일정대로 희망봉을 방문하는 것으로 협의를 잘 이끌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대서양과 인도양의 분기점인 희망봉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자신보다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시는 남고 명예회장님의 인품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말직 수행원인 제가 당시 기여한 것이 있다면 방문지마다 사진을 찍어드리는 일이었는데,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당시에는 코닥 필름 값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순간에만 셔터를 누르려는 저를 보시고 남고 명예회장님께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이보게, 우리가 언제 또 여기 올 수 있겠나? 그러니 무조건 사진을 많이 찍어 두게. 나중에 좋은 사진만 골라 간직하면 되니까."

지면상 더 많은 일화를 소개할 수 없어 아쉽지만 그 이후에도 국내외 여러 출장을 수행하면서 비즈니스 예절과 품격 있는 마음가짐과 언행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김상하 명예회장님, 회사와 국가 · 사회를 위한 그동안의 수많은 수고와 헌신을 후학들이 늘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오니 창업하신 수당 선생님, 함께 수성하신 남령 명예회장님과 더불어 이제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삼양사 前 사장 문성환












하늘 기운이 대지에 스며들어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마주합니다. 지천에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명예회장님에 대한 그리움이 온 가슴에 번져납니다. 사십구재를 마치고 남고 명예회장님의 경륜을 회고하며 그 은덕을 상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도리를 다하지 못한 저에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첫 직장에 발을 내디딜 때는 '몸과 마음을 오롯이 바치리라'는 각오와 함께 기업의 철학을 가슴에 아로새기게 됩니다. 산업보국을 근간으로 하는 삼양의 철학과 성실과 중용을 몸소 실천하신 명예회장님의 삶은 전 직원의 가슴에 뚜렷한 자국을 만들었습니다. 화려함은 확연하게 돋보이기는 하나 잔상은 속히 사라지는 반면, 은은함은 도드라짐이 없으나 마음속 깊이 향기로 남는 것이 우리 삶의 정리인 듯합니다. 이제는 은은한 향기로 남으신 명예회장님의 덕망과 가르치심을 한 페이지 글월로 담는 것이 오히려 폐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명예회장님은 한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대한농구협회장, 한 · 일경제협회 회장, 환경보전협회장, 제2의 건국 범국민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 수십 개의 단체를 이끌며 경제 · 체육 · 환경문화 등 사회 전반의 발전에 헌신하셨음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바쁘신 일정에도 그룹과 맡은 단체들의 성장을 다지셨으며 투철한 공선사후와 중용의 자세, 그리고 조정과 화합의 명인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셨습니다. 특유의 유머와 부드러운 화술, 소박함은 아늑함을 주었고 오늘보다 미래를, 외형보다 내실을 추구하는 혜안은 존경과 애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보여주신 마음과 생각, 말과 행동이 일치된 삶에 보잘것없는 언어로 더 보태고 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만 사표로 여기며 존경해 온 동우회원들의 마음을 담아 몇 가지 일화를 올립니다. 지방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 때 지점장용 소형차(브리사)를 이용해 참석자와 의전하는 이들에게 검소함으로 감명을 주신 일, 대화를 나눌 때면 늘 경청 끝에 공정한 답을 내주시되 상대방이 민망치 않도록 배려하고 격려해 주신 일, 국내외 출장 때는 직접 짐을 챙기시고 이동 후에는 반드시 가정에 안위를 전하시던 일, 고매하신 리더십으로 경제단체나 체육단체를 이끄시는 동안 원로들을 공경하는 일에 솔선수범하신 일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형님이신 남령 회장님에 대한 남다른 우애와 화목함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며, 그 유산을 후손들도 이어받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윤리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IMF로 어려울 때에는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는 넉넉함과 흥취 있는 건배사로 좌중을 편안하게 해주셨지요. 직원 결혼식 때는 주례사를 끝까지 경청하시고 피로연까지 참석해 축하의 참뜻을 보이시며 신혼부부에게 따뜻한 덕담을 전하시던 그 자상함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각종 회의 만찬 때마다 참석자를 기억하시려고 별명을 붙여 가며 이름을 외우시던 모습, 상과 벌을 주심에 신중하셨던 인본 중시, 명절이 지나면 임원들을 불러 제비뽑기로 선물을 나눠주시고 덕담까지 해주시던 그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명예회장님을 또 한번 회상합니다. 

명예회장님은 고귀한 인품과 근엄하신 면모 뒤에 소박한 인정과 서민적인 향기로 더욱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참으로 매력 넘치시는 분이셨습니다. 국가와 그룹의 큰어르신으로서 많은 발자취를 남기시고, 이제는 저희들 곁을 떠나심에 깊은 상실감이 저며옵니다. 가시는 길 제대로 예를 표하지 못한 송구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비록 명예회장님은 저희 곁을 떠나셨지만 저희 마음속에는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명예회장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걱정과 근심 없는 천국에서 영생하시옵소서.


삼양동우회 회장 김일웅 
(삼양제넥스 · 삼양밀맥스 前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