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합니다 - 묵묵히 걸어온 길, 남고의 길을 함께 걷는다

故 남고 김상하 명예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입사해 72년간 경영 현장에 몸담았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뿐 아니라 문화, 체육 등 사회 전반의 발전에 헌신해 온 남고는 삼양과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다. 남고가 묵묵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삼양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본다.


김상하 명예회장은 삼양그룹 창업주 수당 김연수 선생(1896~1979)의 7남6녀 중 5남으로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49년 8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삼양사에 입사해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형님이자 '영원한 동지'인 故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1923~2010)과 함께 부친을 모시며 정도경영과 중용을 실천해 오늘의 삼양그룹을 만들었다.


선친 수당의 가르침 계승, 산업보국과 중용 실천

김 명예회장은 부친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에 따라 산업보국을 근간으로 성실과 중용의 자세로 경영에 임했다. 산업보국 실천을 위해 제당 사업, 화섬 사업 등에 진출하며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에 공을 기울였다. 이에 대한 김 명예회장의 생각은 2015년 발행한 회고록『묵묵히 걸어온 길』에 잘 드러난다.

"사업이란 제조업을 통해 산업보국을 실현해야 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에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의 영속성이 위험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국가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것은 아버지가 사업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으며 나의 신조이기도 하다."

김 명예회장은 평생 경영을 통해 국민의 의식주 해결과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이와 더불어 '분수를 지켜 복을 기르고(養福), 마음을 너그럽게 하며 욕망을 절제하여 기를 기르고(養氣), 낭비를 삼가 재를 기른다(養財)'는 '삼양훈'에 따라 과욕을 경계하고 극단을 멀리하며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일을 묵묵히 실천했다. 

01 1980년대 후반, 김상하 명예회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60여 년간 삼양사를 지켜 왔던 故 남령 김상홍 회장과 함께 02 2000년대, 울산 이온수지 공장 순시 모습



신규 사업 진출의 선봉, 기술 도입과 공장 건설의 주역

김상하 명예회장은 삼양사가 신규 사업에 진출할 때마다 기술 도입, 설비 개선과 공장 건설 등을 도맡으며 선봉에 섰다. 1952년 삼양의 제당 사업 진출을 위해 일본 주재원으로 파견돼 제당 사업에 필요한 기술과 인력 확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귀국 후에는 울산 건설현장의 군용 양철 슬레이트로 지은 간이 숙소에서 현장 근로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공사에 매진했다. 

1968년 폴리에스테르 사업 진출 시에도 기술 도입과 공장 건설을 주도했다. 남고는 기계 및 기술 도입에 필요한 제반 업무를 이끌고 한 달 동안 연수생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기술 교육도 받았다. 1975년 삼양사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후에도 폴리에스테르 공장 증설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 기술 개발과 설비 개선을 강조하고 치밀한 경영관리로 삼양사가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도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남고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을 본궤도로 올린 1980, 90년대에는 당시 첨단 소재로 각광 받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사업과 화학섬유의 원료인 TPA 사업에 진출해 섬유를 넘어 화학 소재로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이 당시의 결정으로 삼양의 화학 소재 사업은 현재 삼양그룹을 대표하는 주력 사업으로 성장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01 1978년 12월, 울산공장 증설 현장 순시 모습 02 1980년 9월,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순시 모습. 늘 현장을 돌아보며 '기술 개발'과 '설비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혜안의 리더십을 발휘한 현장 경영인

김상하 명예회장은 평생 중용의 정신으로 대국적 안목의 의사결정을 내렸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히 구분하는 단호함으로 혜안의 리더십을 발휘한 대표적 사례가 화섬 사업 확대 중단이다. 폴리에스테르 공급 과잉 우려 속에서 국내 모든 업체가 경쟁적으로 신·증설을 추진하던 1990년대, 돌연 화섬 사업 확대 중단을 선언했다. 심지어 신사업으로 의욕을 갖고 추진하던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마저 철수했다. 이미 많은 투자가 진행됐지만 화섬 사업의 한계를 미리 내다본 김 명예회장은 단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남고의 혜안이 증명됐다. 

김상하 명예회장은 현장을 중시했다. 산업보국을 위해서는 제조업을 영위해야 하며, 제조업의 근간은 '품질 좋은 물건을 생산해 적기에 공급한다'는 단순한 진리의 실천이라는 것이 남고의 신조였다. 매달 한 번은 공장을 순회하며 '현장의 직원들이 삼양의 삶을 책임진다'고 격려했으며, 현장을 찾을 때마다 직원들을 위한 선물을 챙겨 직원들도 현장을 찾는 김 명예회장을 반겼다. 

김 명예회장은 항상 경영 환경이 어려운 사업장을 우선적으로 방문했다. 주변에서는 이를 '콩나물 시루를 돌보는 기질'이라고 말했다. 웃자란 콩나물은 누르고, 덜 자란 콩나물에는 물 한 방울이라도 더 준다는 것이다. 사업장을 돌아본 후에는 가능한 한 많은 직원과 식사하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자 애썼다.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협의하는 문화는 창업주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었다. 상생과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력적인 노사관계는 현재 삼양의 기업문화로 확립됐다.

01 2011년, 삼남석유화학 여수공장 방문 시 직원들과의 기념 촬영 02 2008년 6월 6일, 대전 의약공장 순시 모습. 삼양의 생분해성 봉합사 기술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철저한 계획과 실행으로 세심한 배려

김상하 명예회장은 철저하고 꼼꼼한 사전 준비로 유명하다. 수립한 계획은 그대로 실행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정해진 일정은 반드시 소화하고, 식사 메뉴처럼 사소한 것도 바꾸지 않았다. 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김 명예회장은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한 후에는 음식의 맛이나 직원들의 반응을 일일이 확인하고 직원들이 좋아하면 더없이 행복해했다. 이런 기질은 대한상공회의소장 재임 시절 국가를 대표하는 민간 경제사절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철저한 계획 수립과 실행, 타인에 대한 배려는 커다란 책임감에서 비롯됐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에서 나의 책임이 가장 크기 때문에 하루에 세 번씩 반성한다"며 맡은 일에 항상 최선을 다했다. 반면에 일반 직원에게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검토하는 임원에게 "기업 환경이 일시적으로 악화됐다고 직원들을 함부로 내보낼 수 없다. 오늘의 모든 책임을 직원들에게만 지우게 할 수 없다"며 인원 감축을 백지화하기도 했다. 

01 1995년 6월 4일, 제23회 세계 환경의 날에 김상하 명예회장이 직접 나서 행사장을 점검하고 있다. 02 1995년 7월 27일, 경제사절단으로 미국 방문 시 백악관 앞 03 2010년, 대전 용기 공장에서 생산라인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모습 



장학재단 통한 인재 육성과 성심을 다한 대외 활동

김상하 명예회장은 선대부터 내려온 전통을 계승해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에 힘썼다. 선친인 수당 김연수 회장은 1939년 사재를 출연해 국내 최초의 민간 장학재단인 양영재단을 설립했고, 1968년에는 아들들과 함께 수당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을 확대했다.

생의 마지막까지 수당재단, 양영재단, 하서학술재단 이사장으로 일했던 김 명예회장은 선친의 유업을 계승해 재단 사업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전주, 울산, 여수 등 주요 공장 소재지의 지역사회에도 다양한 지원을 했다. 

김상하 명예회장은 한때 100개가 넘는 단체의 회장직을 수행할 만큼 주어진 소명에 책임을 다했다. 특히 1987년 취임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연임을 거듭해 12년간 재임하며 최장수 회장으로 기록됐다. 대한상의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상공회의소로 출근해 우리나라 상공업 발전에 기여하고 민간 경제외교 사절로 전 세계의 정치, 경제인들과 교류하며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이는 현직 경영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경우로, 책임을 맡으면 무엇 하나 대충 하지 않는 김 명예회장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한농구협회장도 연임을 거듭해 1985년부터 12년간을 맡았다. 김 명예회장이 협회장으로 일하는 동안 한국 농구는 농구대잔치의 흥행과 프로농구 출범 등으로 중흥기를 맞았다. 이 외에도 한ㆍ일경제협회장, 제2의 건국위원회 공동위원장, 환경보전협회장, 장묘문화 개혁 범국민협의회장 등을 맡으며 문화, 체육 등 사회 전반의 발전에 성심을 다했다.

01 2011년 2월 18일, 장학금 수여식에 참여한 김상하 명예회장. 양영 · 수당재단에서는 매년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사업을 펼치고 있다. 02 1988년 5월 9일, 제13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당선 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03 1999년 11월 7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1999-2000 애니콜 프로농구 개막식 축사 모습. 김 명예회장은 농구계를 하나로 이끌며 프로리그를 출범시키는 등 커다란 공을 세웠다.